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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의 우직함 본받아 경제위기 극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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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기축년(己丑年) ‘소띠 해’ 의미는
2009년 기축년(己丑年), ‘소띠 해’가 밝았다.
소는 여유와 평화를 상징한다. 12지신(十二之神) 중 소는 방향으로는 동북, 시간으로는 새벽 1~3시, 달로는 음력 12월을 지키는 신이다. 이는 다음날을 준비하는 시간이고 새로운 한해를 기다리는 시기에 해당한다.
소는 우리 민족에게 단순한 가축의 의미를 넘어 한 식구나 다름없었다. 날씨가 추워지면 짚으로 짠 덕석을 입혀주었고 봄이 오면 외양간을 먼저 깨끗이 치웠으며 먼길을 갈 때에는 짚으로 짠 소신을 신겨 발굽이 닳지 않게 해주었다.
천진기 국립민속박물관 민속연구과장은 “농사가 중요한 생업이던 시절, 소는 달구지 등을 통해 운송을 담당했고 논밭을 갈았으며 급할 때에는 목돈을 마련할 수 있는 비상금고의 역할까지 해왔다”면서 “소중한 노동력이자 재산이었으며 사람과도 가장 친숙했던 동물”이라고 설명했다.
소는 우직하나 성실하고, 온순하지만 끈질기며, 힘은 세어도 사납지 않다. 그래서 우리 조상들은 “소가 말이 없어도 열두가지 덕이 있다”고 했다.
소는 풍요를 상징해 제의에 사용되기도 했는데 조선시대에는 풍년을 기원하기 위해 매년 경칩 후 첫 해일(십이지 중 돼지에 해당하는 날)에 ‘선농제’를 지냈다. 이는 왕이 직접 밭 가는 모습을 보여 농사의 중요성을 알리는 행사였다. 밭을 갈고 난 뒤 제물로 바쳐진 소로 탕을 끓여 먹었는데 그 음식이 바로 ‘설렁탕’이다. 세종대왕이 밭을 가는데 비가 와서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자 ‘선농단’에서 소를 끓여 먹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오랫동안 사람과 함께 해온 소는 벽화나 토우, 선비들의 그림이나 시문에서도 자주 등장한다. 고대 벽화 속에서 소는 여물을 먹고 있거나 가마·달구지 등을 끌고 있는데 이를 통해 삼국시대 때 이미 농사에 소를 부리기 시작한 것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 선비들은 도가적인 이상향을 동경해 소를 각별한 존재로 생각했다. 행동은 더디지만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고 세상에 흔들리지 않는 유유자적함이 귀감이 되었던 것이다.
소가 부의 상징인 것은 부지런히 일하고 성실하기 때문이다. 모쪼록 올해는 많은 일자리가 생겨 많은 사람들이 일할 수 있고 그로 인해 다시 집안이, 나라가 일어설 수 있기를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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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농민신문 2008년 1월 1일자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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